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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유럽연합 경쟁법 동향 시리즈18]
벨기에 경쟁법상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의 규제

* 단축 URL: https://bit.ly/3cUr408

이 상 윤
고려대학교 ICR센터 연구원



1. 배경



벨기에는 지난 2015년 말부터 약 3년 여에 걸쳐 경제적 의존(economic dependence) 개념의 도입에 관한 논의를 계속해왔으며, 2019년 3월 21일, 관련 내용을 포함한 경제법(Het Wetboek van Economisch Recht, 'WER') 개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원문). 이번 개정은 다른 회원국들에서의 법 집행 (예: 독일 Edeka 사건, KVR 3/17)과 유럽연합(EU)의 불공정거래행위 지침 (Directive (EU) 2019/633) 도입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또한 최근 유럽연합에서 관찰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 움직임과도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벨기에 경쟁당국의 수장인 Jacques Steenbergen은 ‘최근 다른 회원국들에서 HRS나 Booking.com 등 온라인 플랫폼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사건들을 통해 벨기에 경쟁법에도 수직적 개념의 남용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Garzaniti, Janssens, & Oeyen). 동 규정의 실제 집행 여부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지만 가능성만큼은 분명해진 상황으로, 이 글에서는 입법의 배경과 주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2. 주요 내용



벨기에 경제법(WER)은 제I권(Boek I)에 관련 개념들을 정의(Definities)하고 제IV권(Boek IV)에서 경쟁법과 관련된 내용들(Bescherming van de mededinging)을 규정하고 있다. 개정법은 제I권 제6조(Art. I.6) 제4항에 경제적 의존 지위(positie van economische afhankelijkheid) 개념을 삽입하고 제IV권 제1장 제1절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규정(Art. IV.2) 아래에 제2/1조(Art. IV.2/1)를 추가하면서 경제적 의존 지위 남용행위 금지 규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러한 편재는 다른 회원국들, 예컨대 프랑스 상법전이 경제적 의존 남용을 규정하는 방식(Code de commerce, L.420-2)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2월 21일 수정안(amendment)은 제안이유(verantwoording, 이하 '제안이유서')에서 동 법을 도입하기 위하여 독일, 오스트리아, 키프로스,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 여러 회원국들의 법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2.1. 경제적 의존 지위



개정법 Art. I.6 에 따르면, '경제적 의존 지위'는 "한 사업자가 하나 또는 둘 이상의 거래상대방 사업자(들)에 대해 갖는 지위로서, 그가 합리적인 기간 내에, 합리적인 조건 및 비용 하에서, 합리적으로 동등한 대체거래선을 찾을 수 없는, 그리고 거래상대방 사업자(들)이 그에게 일반적인 시장 조건 하에서는 불가능했을 사항들을 거래조건으로 부과할 수 있는 지위"로 정의된다. 


다른 회원국들의 법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의존 지위가 있는 경우 거래상대방 사업자는 관련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경쟁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제안이유서는 시장지배적 지위 규정에 더해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게 된 이유로 , '사업자가 객관적인 시장 지배(objectieve dominantie van een markt)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힘(relatieve macht)으로도 거래상대방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힘의 균형(een machtsverhouding samenhangen)과 관련된 남용행위들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법적 의존(juridische afhankelijkheid)보다 넓은 '경제적 의존' 개념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 '경제적 의존 지위'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법문에서 규정한 '(i) 대체거래선의 부재'와 '(ii) 부당한 거래조건의 부과 가능성' 요건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 거래상대방 사업자의 상대적인 마켓파워(de relatieve marktmacht van de andere onderneming);

  2. 사업자의 매출액에서 거래상대방 사업자가 차지하는 중요성(een belangrijk aandeel van de andere onderneming in haar omzet) - 중요성이 크면 클수록 의존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고려된다;

  3. 거래상대방이 보유한 기술 또는 노하우(de technologie of de knowhow die de andere onderneming bezit);

  4. 브랜드 가치(de grote bekendheid van een merk), 상품의 희소성(schaarste van het product), 상품의 부패 가능성(de bederfelijke aard van het product) 또는 소비자의 구매 충성도(nog loyaal koopgedrag van de consumenten);

  5. 필수적 설비 또는 생산요소에 대한 사업자의 접근성(de toegang voor de onderneming tot hulpbronnen of tot essentiële infrastructuur);

  6. 상당한 경제적 불이익, 보복, 또는 계약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de vrees voor ernstig economisch nadeel, voor represailles of voor het beëindigen van een contractuele relatie);

  7. 다른 비슷한 상황의 사업자들과 달리 리베이트와 같은 특별한 조건이 사업자에 정기적으로 부과되어 온 사실(de reguliere toekenning aan een onderneming van bijzondere voorwaarden, zoals kortingen, die niet aan andere ondernemingen worden toegekend in vergelijkbare gevallen;);

  8. 사업자가 의도적인 또는 반대로 의무적인 선택으로 경제적 의존 지위에 위치하게 되었는지 여부(haar weloverwogen keuze of integendeel haar verplichte keuze om zichzelf in een positie van economische afhankelijkheid te zetten) 등.



물론 위와 같은 고려사항들은 기존의 경쟁법 판단에서도 어느 정도 고려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제안이유서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경우 마켓파워(marktmacht)가 절대적으로(absoluut) 고려되는 반면 경제적 의존 지위의 경우에는 상대적인 마켓파워(relatieve marktmacht)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둘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수평적 경쟁을 전제로 관련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를 포착하기 위한 개념인 '상당한 마켓파워(substantial market power)'와 수직적 관계(또는 경쟁)를 전제로 경제 의존적 지위를 포섭하기 위한 '상대적 마켓파워(relatieve marktmacht)'를 구별하여 이해하는 시각으로 이해된다. 물론 유럽에서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것은 아니며, 독일 경쟁법 제20조(Gesetz gegen Wettbewerbsbeschränkungen, Art.20) 역시 '상대적 또는 우월적 마켓파워(relativer oder überlegener Marktmacht)'를 시장지배적 지위(GWB, Art.19)와 별도로 규정해놓고 있다.



2.2. 남용행위



시장지배적 지위 규정(Art. IV.2. WER; Art.102 TFEU)과 마찬가지로, 의존적 지위나 상황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안이유(verantwoording)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거래 당사자간의 힘의 불균형과 거래의 결과로 일방이 입게 되는 경제적 불이익은 법이 보장하고 있는 계약자유, 사적자치, 영업자유(Art.16, Charter)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적 의존 지위를 이용한 행위가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면서 약한 사업자는 물론 시장의 기능과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남용행위로서 금지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Art. IV.2/1은 경제적 의존 상황을 남용하는 행위(misbruik)가 벨기에의 관련 시장 또는 그 상당한 부분의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waardoor de mededinging kan worden aangetast wordt op de betrokken Belgische markt of op een wezenlijk deel daarvan)에 경쟁법 위반으로 금지된다고 규정하면서, 금지되는 행위의 유형으로 거래거절, 가격남용, 출고제한, 차별취급, 끼워팔기 등을 예시하고 있다.



  1. 판매, 구매 또는 기타 거래조건들을 거절하는 행위(het weigeren van een verkoop, een aankoop of van andere transactievoorwaarden);

  2. 직간접적으로 불공정한 구매 또는 판매 가격 또는 기타 불공정한 거래조건들을 부과하는 행위(het rechtstreeks of zijdelings opleggen van onbillijke aan- of verkoopprijzen of van andere onbillijke contractuele voorwaarden);

  3. 생산, 마케팅, 또는 기술적 발전을 제약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het beperken van de productie, de afzet of de technische ontwikkeling ten nadele van de verbruikers);

  4. 거래상대방들에게 동등하지 않은 거래조건을 동등한 거래에 적용함으로써 그들을 경쟁상 불이익한 지위에 놓이게 만드는 행위(het toepassen ten opzichte van economische partners van ongelijke voorwaarden bij gelijkwaardige prestaties, hun daarmede nadeel berokkenend bij de mededinging);

  5. 거래상대방에게 계약 목적물의 속성상 또는 상관행상 관련이 없는 사항을 추가적인 거래조건으로서 요구하는 행위(het feit dat het sluiten van overeenkomsten afhankelijk wordt gesteld van het aanvaarden door de economische partners van bijkomende prestaties, die naar hun aard of volgens het handelsgebruik geen verband houden met het onderwerp van deze overeenkomsten).



'시장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mededinging kan worden aangetast wordt)'의 해석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므로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경제적 의존 남용의 구체적인 행위 유형들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와 거의 같다는 점에서 기존의 경쟁제한 효과와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제안이유서 역시 '문제된 행위가, 법적 사실적 요소들에 기초하여(op basis van juridische en feitelijke elementen) 충분한 정도의 가능성으로(met een voldoende mate van waarschijnlijkheid), 직간접적으로((echtstreeks of onrechtstreeks) 현재 또는 잠재적(daadwerkelijk of potentieel)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남용행위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보면서, 'Art. IV.2/1의 행위 유형들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로 금지되는 것들과 같기 때문에 전통적인 경쟁법 하에서 확립된 접근으로 이들을 분석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가 수평적 경쟁 관계에 있는 효율적 사업자의 배제 효과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반면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는 수직적 관계에서의 '상대적 마켓파워'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본질적 차이가 어떻게 극복,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2.3. 법의 집행



새롭게 도입되는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 금지 규정은 기존의 경쟁법 규정들과 동일한 프레임워크 하에서 집행된다. 벨기에 경쟁당국(Belgische Mededingingsautoriteit)은 위 법의 위반 사항에 대해 이해관계인의 신고나 관련 경제부처의 장관이나 기관장의 요청을 받아, 또는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으며(개정법 Art. IV.41, §1, 2°-4°, Art. IV.44), 최대 매출액의 2%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개정법 Art. IV.70, §2). 과징금 한도는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 경우와 차이가 있지만(최대 10%, Art. IV.70. §1), 2% 한도는 경쟁당국이 3년마다 제재효과 등을 검토하여 다시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개정법 Art. IV.70, §2, ¶2). 물론 사업자도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를 당하는 경우 벨기에 법원에 금지명령을 청구할 수 있으며 문제된 행위로 인한 손해의 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Art. XVII.72).


경제적 의존 지위의 금지 규정을 도입함에 있어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이것이 왜 경쟁당국의 임무가 되어야 하는가'하는 점이 될 것이다. 금지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경쟁당국의 공적 개입이 아닌 민사법원에 의한 사적분쟁 문제 해결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안이유서는 경쟁당국이 경쟁제한적 행위들을 조사하고 금지시키기 위해 갖고 있는 권한들이 경제적 의존 행위를 금지하고 피해 사업자를 구제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쟁당국의 개입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경쟁당국이 (i) 남용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 (ii) 증거를 수집해 피해 사업자들의 입증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 (iii) 사업상 기밀정보를 보호해줌과 동시에 피해 사업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해 사업자들이 갖고 있는 보복 두려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 (iv) 가해 사업자를 절차 진행에 협조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점, (iv) 공익을 지키기 위해 문제된 사업행위를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경쟁당국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3. 의의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 금지 규정은 개정법이 벨기에 관보(Belgian Official Gazette)에 게재된 시점으로부터 13개월 이후인 2020년 5월부터 효력을 갖고 시행된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개정법은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 금지 규정의 도입 외에도, 불법적 계약조항(Onrechtmatige bedingen)의 금지¹, 사업자간 불공정한 상행위(oneerlijke marktpraktijken tussen ondernemingen)의 금지² 등 중요한 개정사항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모두 EU의 불공정거래행위 지침(Dir. 2019/633)과 다른 회원국들의 관련 법제에서 영향을 받아 입법된 것으로,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 규정과 함께 향후 사업자 간(business-to-business, B2B) 거래, 특히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행위(unfair trading practices, UTPs) 문제에 대응하는 데 적극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특히 식료품 유통망과 온라인 플랫폼 산업을 중심으로 수직적 관계에 있는 사업자간의 상대적 힘(relative market power)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꾸준한 관심을 갖고 분석해왔으며, 이와 같은 노력은 최근 EU와 회원국 모두에서 입법 등으로 천천히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이번 벨기에의 법 개정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특히 벨기에는 그동안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자율 규제 시스템(voluntary initiative)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곳으로 알려져왔다는 점에서(Commission, 2016, p.11) 위와 같은 공적 개입 체계의 도입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번 개정법의 규정들 특히 경제적 의존 남용행위 금지 규정이 실제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집행, 작동될 수 있을지 아니면 포르투갈처럼 사실상 사문화될 것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경제적 의존 지위'와 '남용' 등 논쟁적 개념들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제에도 참고할 부분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¹ 개정법 Art. VI.91/3. § 1. 프랑스 상법 Code de Commerce Art.442-1, (1), 2° 와 같이 계약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 간 상당한 불균형을 발생시키는 특정 계약조항들을 금지하고 있다. 개정법 Art. VI.91/4.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금지되는 4가지 행위들을, 개정법 Art. VI.91/5는 위법성이 추정되는 8가지 행위들을 제시하고 있다. 2020년 11월 시행 예정.


² 오인유발(misleidend) 및 강압적(agressief) 상행위 등 기존에 사업자-소비자 관계에서 적용되던 보호 범위를 사업자-사업자 관계로 확장한 법이다. 개정법 Boek VI, titel 4, hoofdstuk 2. 2019년 8월 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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